젊은날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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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써니 조회 28회 작성일 2021-05-10 16:26: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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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낭독의 발견 : 백기완, 젊은날

먼저간 친구 고봉이를 기리며, 그와 함께 했던 "젊은 날"을 생각한다.

젊은 날
- 백기완-

모이면
논의하고 뽑아대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가 좋았다

하나를 알면
열을 행하고
개인을 얘기하면
역사를 들이대고
다만 다만 사랑이 튕기면
꽃 본 듯이 미쳐 달려가던 곳

추렴거리 땡전 한 푼 없는 친구가
낚지볶음 안주만 많이 집어먹는다고
쥐어박던 그 친구가 좋았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헤매이지 아니했다

돈벌이에 미친 자는
골이 비었다고 하고
출세에 안달을 하면
호로자식이라 하고
다만 다만 통일논의가 나래를 펴면
환장해서 날뛰다가 춥고 떨리면 찾아가던 곳

식은 밥에 김치말이 끓는 화로에
내 속옷의 하얀 서캐를 잡아주던
말 없는 그 친구가 좋았다

그것은 내 이십 대 초반
육.이오 전쟁 직후의
강원도 어느 화전민 지대였지

열여섯쯤 된 계집애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이따만한 구데기를 파내 주고
아, 우리들은 얼마나 울었던가

나는 나는
일생을
저 가난의 뿌리와 싸우리라 하고
또 누구는 그 민중한테 장가를 들거라 하고

화전민이 답례로 보낸
옥수수 막걸리로
한 판 벌린 웅장한 아름드리 소나무
그 위에 걸린 밝은 달 흐르는 맑은 물
빨개벗은 알몸의 낭만들

하지만 하지만 저 밝은 달 저 맑은
물만을 대상으로 노래를 할 수 없다며
허공을 쥐어박고
인간의 현장 강원도 탄광으로 뛰어들던
빛나던 눈의 그 친구가 좋았다

세월은 흘렀다
다시 강산엔 폭풍이 몰아치고
이름 있는 주소마다 자갈이 물렸다

더러는 잡혀가고 더러는 물러서서
바람이 차면 여울지던 곳
포구의 눈물이라고 하던
늙다구리 술집

술값은 통일된 뒤에 준다고 하고
마냥 굽이치는 이의 짓은
마냥 그 모양이니 그러자 하고
이야기가 으시시하면 혹시 잡혀갈세라
슬며시 나가서 덧문을 닫아주던 그늘진 얼굴

그 뒤
그 집은 망했다고 하고
술꾼들은 발이 빠졌다고 하고
그 찬란한 파국을 미리 울던
늙은 술집에 늙은 그 여자가 좋았다

그래도 그래도 눈물은 분분했다
가파른 형장에선 부패독재와 싸우는 남모를
예지가 불을 뿜는데
한 번 스친 밤의 꽃을 못 잊어서 한 번 스친 밤의 꽃을 못 잊어서
그 여자가 잡혀가 있는 감옥소까지 찾아가서
꽃다발을 잔뜩 안고 서서 울던 그 친구를 생각했다

거기서 거기서 정서적인 방랑이냐
이지적인 결단이냐
꼬리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긴 말수를
냉정히 자르고 떠나간
오호, 내 젊은 날의 그 억센 주먹쟁이들이여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길래
나만이 외로운 독방 희미한 등불에 젖어서
똥두간에서 바시락대는 쌩쥐 소리에
거대한 역사의 목소리 일러 듣는 듯

그렇다
기완아 기완아 백 번을 세월에 깎여도
너는 늙을 수가 없구나

분단독재 부패독재의 찬바람이 여지없이 태질을 한들
나는 끝이 없는 젊음을 살테다
암 살고야 말테다라고 온몸으로 몸부림치는
마루 바닥에 새벽이 새벽이 벌겋게 물들어 온다





[오디오북] 젊은날의 사랑(일곱) | 노은장편소설 | "병신자식을 낳을까봐 그렇게 괴로워하더니 내 대신 당신이 병신 자식을 낳았군요, 바로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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